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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4 Tue

신비롭고 알쏭달쏭한 배우, 김민정

나는 도통 김민정이란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현실에선 스캔들 한 번 없는 여배우지만, 영화 속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왠지 그 뒤에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김민정은 그게 바로 자신이 바라는 바라고 말한다.

여름에 개봉할 줄 알았던 영화 <밤의 여왕>이 10월에 개봉해요. 그사이 어떻게 지냈어요?
공백기 아닌 공백기가 생긴 건데, 저한텐 정말 금쪽같은 시간이었어요. 왜, 여자들 그럴 때 있잖아요. 한 번 확 정리하고 싶을 때. 제가 작년에 세 작품을 연달아서 했어요. 드라마 <제 3병원> 하고, 영화 <가문의 귀환>이랑 <밤의 여왕>을 찍었거든요. 바쁘니까 옷을 계속 쌓아놓고 살았어요. 정리하고 싶다, 하고 싶다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시간이 생긴 거죠. 2~3년 만에 대대적으로 옷 정리를 한 건데, 이번 여름 무지 더웠잖아요? 저 때문에 가족이 고생 많았어요. 집을 다 뒤엎는 통에 다들 골병이 났거든요.

혹시 그렇게 싹 뒤엎고 났는데, 물건들은 그대로 남은 거 아니에요? 물건 잘 못 버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번 정리의 핵심은 ‘비우자’였어요. 방에 여백이 있으면 그 자리에 더 좋은 게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옷으로 방이 꽉 차도 솔직히 안 입는 옷이 많잖아요. 정리하고 나서 성당에 기부도 하고, 주변에 필요하다는 사람들한테도 줬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더라고요. 방을 정리하고 나니까 마음도 정리돼서 좋고요.

지난 생일엔 기부 이벤트를 진행했더라고요. 팬들이 모금한 돈을 입양아 보호 시설에 보냈죠?
네. 제가 열아홉 살 때부터 기아대책본부 홍보대사를 했거든요? 근데 항상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게, 막상 그런 자리에 가도 오래 도와드리질 못하잖아요. 이건 도와드리러 온 건지, 뭘 홍보하러 온 건지 어느 순간부터 헷갈리더라고요. 이렇게 돕는 건 안 돕느니만 못 하단 생각도 들고요. 작년부터 이 부분에 대해 부쩍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아기들이 입양되기 전의 과정을 담은 방송을 우연히 봤는데, 생명을 얻어서 태어난 아이들이 너무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는 걸 보고 나니까 계속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조금 오버해서 말하면 저희 사촌 동생들도 제가 다 업어서 키웠어요. 이모나 숙모가 들으면 “언제?”라고 하시겠지만. 하하.

아까 감독님이 사온 복숭아를 씻어서 먹을 때, 식초로 닦아야 하는데 물로만 닦아서 불안하다고 했잖아요? 제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면서 막 먹으니까 “신경 쓰셔야 해요”라고 잔소리까지 하고요. 원래 건강을 잘 챙기는 편인가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사회생활을 했잖아요. 일에 오래 노출되다 보니까 자의든 타의든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30대 초반엔 몸을 챙기는 배우도 있고, 안 챙기는 배우도 있지만 전 확실히 챙기는 편이에요. 운동도 거르지 않고, 마인드도 긍정적으로 가지려고 하고요. 그래야 일할 때도 지치지 않아서 좋아요.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끌어안을 수도 있고요.

 

가운데 가르마를 탄 긴 머리에, 속눈썹을 붙이기는커녕 마스카라도 바르지 않은 채 입술만 빨갛게 바른 화장하며, 속옷이 훤히 비치는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반길 여배우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김민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옷이 관능적이니까 몸짓은 요염하지 않은 게 좋겠죠?”, “입고 있는 뷔스티에가 지금보다 더 부각돼야 할 거 같아요”라는 식으로 의견을 말하기에 바빴던 것. 하긴, 남들이 뒷걸음칠만 한 노출도, 코믹한 연기도 즐겼던 그녀였다.

 

똑 부러지는 성격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오늘 촬영을 그렇게 진두지휘할 줄은 몰랐어요. 하하. 본인이 원하는 걸 스태프들한테 매우 정확하게 말하던데요?
쌓아두는 걸 못 해서 그래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단점은 포커페이스가 안 된다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얼굴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서 그런지 다 드러내게 되더라고요. 일할 땐 너무 장점이지만 사실 생활할 땐 단점이죠. 어찌 됐든 전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속으로 감추거나 꽈서 말하는 성격이 안 되죠. 내가 원하는 건 A인데, 상대가 B를 원한다고 하면 절충안을 찾아보자고 해요. 들어봐서 상대 말이 맞으면 깔끔하게 내 의견을 접고 B로 가고, 제 의견을 반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싶으면 끝까지 주장해요. 다행히 지금까지 촬영장에서 만난 감독님 중에는 그런 부분에서 저와 잘 맞는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내는 의견을 많이 인정해주시니까 저도 자신감 있게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근데 늘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건, 언제든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상대의 얘기를 못 듣는 경우가 많잖아요.

데뷔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요즘, 배우로서 어떤 시기를 보내고 있나요?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한 번 몸에 이상이 있어 드라마(<히어로>)를 하차한 적이 있어요. 그걸 꼭 ‘침체기’였다고 표현하고 싶진 않은데, 분명히 멈춰 서 있기는 했어요. 본의 아니게 제작진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모든 화살이 저한테 돌아올 때 억울하기도 했고요. 근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그땐 내가 사람들한테 피해를 준 게 맞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 작품을 선택했을 땐 책임을 지겠다는 거니까요. 그렇게 쉬고 나서 <가시나무새>라는 드라마를 했고, 이후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작품을 못 했어요. 그러다 만난 작품이 <제 3병원>인데, 그게 케이블 드라마잖아요?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전까지 전 좀 고지식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어요. 케이블은 케이블이라고요. 그런데 그 작품을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저한텐 정말 혁명과도 같은 일이에요. <가문의 귀환>(이하 <가문>) 같은 코미디 영화를 선택했다는 것도 그렇고요.

<가문> 개봉 당시 한 인터뷰를 보면 이전까지 늘 무거운 작품을 했는데, 이젠 좀 가벼운 것도 즐기고 싶단 이야기를 많이 했더라고요. 스무 살 언저리에 <버스, 정류장> <발레 교습소> 같은 영화에 나왔던 김민정이 왜 갑자기 서른이 넘어 <가문> 같은 작품을 선택했는지 이유가 궁금했어요. ‘고도의 전략일까, 감정적인 선택일까’ 하고요.
제가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도 않고요. 마음 가는 대로 선택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이 있잖아요? 생각해보니 전 그 틀을 너무 껴안고 살았더라고요. 그리고 데뷔한 지 23년이 됐는데, 지금 틀을 깬들 누가 뭐라 할까 싶어 나름 용기 있게 깬 거예요. 저 자신도 제가 어느 틀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꼈거든요. 다시 시작하는 느낌? 그러다 <밤의 여왕>이란 작품을 만났는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시나리오가 제 손에 들어온 순간, 지금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데뷔 후 가장 강박을 느꼈던 시기라면 언제일까요? 아역 출신 배우들은 그 타이틀을 벗는 게 스트레스라고 하더라고요.
전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열아홉, 스무 살 때도 어른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거든요. 예뻐 보이는 걸 보면 따라 하고 싶어도, 어른처럼 보이는 진한 화장이나 패션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왜 아역 출신 배우가 성공하기 어렵다고 하는지 알 것 같긴 해요. 사회생활을 너무 일찍 시작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 편안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들으면서 살다 보면 몸과 마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분에선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요. 주춤하다가 다시 성공한 사람들은 그냥 재기한 게 아니에요.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죠.

천정명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정명 오빠랑 친분이 있다 보니 조금 더 친밀하게 연기할 수 있어 좋았어요. 아무래도 남자 배우들은 여배우를 대할 때 조심스럽잖아요? 근데 제가 “이렇게 해봐, 더 과하게 해도 돼”라고 하면 오빠는 “그래도 돼?”라고 물어봐요. 

실제 생활에서 김민정은 밤의 여왕인가요, 아닌가요?
아니죠. 밤의 여왕이라면 밤에 여왕처럼 놀아야 할 텐데, 전 밤엔 그냥 자요. 낮은 낮답게 활동적으로 보내고, 밤에는 밤답게 고요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영화 속 천정명 씨 상황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 남편의 과거가 의심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전 불러다 놓고 이야기할 거예요. 조용히 뒤를 캘 만한 인내심이 없거든요. 평화주의자라 웬만하면 대화로 풀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연하 남자 배우랑 연기한 적이 없더라고요. 요즘엔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보다 어린 게 트렌드인데 말이죠.
안 그래도 <제 3병원> 할 때 상대 남자 배우들(김승우, 오지호)이 저랑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걸 보고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럼 제가 “1~2년만 기다려봐. 점점 내려가고 있으니까”라고 말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제 상대 배우 나이가 점점 내려가고 있어요. 정명 오빠가 저보다 두 살 연상이니까, 곧 연하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남자 배우나 아이돌이 있다면요? 
음… 지금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요? 제가 워낙 연하를 남자로 느끼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런가 봐요.

배우로서 듣고 싶은 말과 여자로서 듣고 싶은 말은 뭐예요?
배우로선 연기로 칭찬받는 거죠. “민정 씨는 연기할 때마다 달라” 같은 말들이오. 여자로서 최고의 칭찬은 ‘현명하다’? 이 말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여자가 가져야 할 세 가지 덕목이 있다고 하잖아요? 마음씨, 맵시, 솜씨. 제가 결혼할 상대한테는 그걸 다 갖춘 여자처럼 보이고 싶어요.

그런데 남자가 “민정 씨는 정말 현명한 여자인 것 같아요. 좋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건 별로 로맨틱하지 않은 느낌이잖아요. 남자한테 어떤 고백을 듣고 싶어요?
“민정 씨는 겉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아요”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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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Photographer 목정욱
    Editor 김가혜
    Stylist 고민정
    Hair 서언미(라끌로에)
    Makeup 김수희(라끌로에)
    Assistant 박수진, 이상미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3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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