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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Fri

사진이 아닌, 가슴속에 남는 여행을 하세요!

특종 잡는 기자로 지낸 23년의 시간을 접고, 훌쩍 자신의 고향 제주도로 떠나 ‘올레’라는 이름의 길을 개척한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그녀가 개척한 길은, 스스로의 꿈을 이뤄준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힐링 스폿인 제주 올레길 위에서, 코스모폴리탄 편집장이 그녀와 함께 걸으며 길과 인생, 그리고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 올레길을 만들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6년째네요. 작년 말 드디어 21코스의 제주 올레길이 전부 완성됐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감격스러웠어요. 제주에 처음 길을 내기 시작하면서 “제주 한 바퀴를 다 잇는 길을 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게 정말 이뤄질 거라는 확신은 없었거든요. 어떤 일이든 중간에 시련이나 난관에 부딪힐 수 있잖아요. 한두 개 코스를 만들다가 중단될 수도 있고.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라는, 그저 막연한 꿈이었죠.


그런데 바램이 정말 현실로 이뤄진 거군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크고 작은 파도가 있었어요. 더군다나 마지막 코스를 개장하기 직전에 올레길에서 굉장히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죠. 우리의 길을 걷고 싶어서 제주를 찾은 한 여성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어요. 정말 납득이 안 가고, 화가 나고, 속상하고 그랬죠. 어쨌든 그런 것을 딛고 완성된 길이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어요. 그냥 ‘뿌듯하다’가 아니라, ‘아, 우리가 그래도 해냈구나. 드디어 해냈어’ 이런 생각이었죠. 그동안 찾아와준 올레꾼들과 길을 내준 마을 주민들, 길을 지켜준 자원봉사자들과 제주의 자연 등 모든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 이뤄졌는데, 이제는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까지는 일단 길을 내느라고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길을 낸 지역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갖고, 그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문화적이든 경제적이든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한편으로는 전 세계에서 제주 올레길을 걷기 위해 한국을 찾는, 세계인들이 걷고 싶은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제주 올레길이 그런 세계적인 길이 된다면 정말 감동적이겠네요.
그렇게 될 거라고 봐요. 저는 제주의 풍광에도 자신 있고, 해녀 문화를 비롯해 개성 있는 콘텐츠도 있다고 자부해요. 외국의 유명한 길을 꽤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우리 제주 풍광만큼 아기자기하고 마음 편하게 수용하며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은 드물거든요. 물론 제주보다 규모가 큰 곳은 많아요.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은 거대하다고 느끼는 것만은 아니거든요.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위압감을 가질 수도 있고. 제주의 올레길은 한 달 내내 걸어도 위압감을 주지 않고 계속 ‘아, 아름답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만만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부담없이 나설 수 있지만 엄청 아름다운 거예요. 


최근 미국 최대의 트레일 단체인 아메리칸 트레일즈 협회 어워즈에서 제주 올레길이 국제 부문 트레일상을 수상했잖아요. 세계로부터 제주 올레길의 강점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네요.
처음 어워즈 후보에 올랐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만으로도 정말 짜릿했어요. 세계적인 트레일상의 후보가 된다는 것은 정말 감격적인 일이잖아요. 6년밖에 안 된 트레일인데,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성과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죠.


올레길은 코스마다 다른 개성이 있잖아요. 그 길만의 스토리를 만들려고 생각한 부분도 있나요?
전혀 없어요. 사실 길이라는 게 처음부터 스토리텔링을 전제로 찾는 게 아니에요. 제가 길을 찾을 때 중요한 원칙으로 삼은 것은 테마나 스토리가 아니라 사람이 걷기에 가장 좋은 좁은 길, 오솔길, 풍광이 예쁜 길이었죠.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 위에서 역사와 문화 이런 것이 튀어나오게 돼 있어요. 일부러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코스는 어떤 길로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그 길 주변에 사는 분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 만들어가야 길이 열리잖아요.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이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문제는 어떻게 풀어갔나요?
제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점에서 절반은 유리한 면이 있었죠. 하지만 30년간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진짜 토박이 취급은 덜 받을 수밖에 없어요. 대신 제주 토박이인 제 동생들이 큰 힘이 됐어요. 지금이야 제주 간판의 절반이 올레일 정도로 올레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에 올레길을 일부러 내달라는 분들이 있을 정도지만,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공유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동생들이 사적인 인간관계를 동원하고 그것으로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죠.


당시 마을 주민들은 올레길이 이 정도의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죠.
관광 전문가조차 누가 비싼 돈 주고 비행기 타고 와서 그렇게 걸어다니는 관광을 하겠느냐고 말했을 정도니까 주민들도 납득을 잘 못했어요. “나중에 도움이 될 거다”라는 말을 믿고 기대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인정에 이끌려 해주신 거죠. 때로는 목장 문을 새로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지요. 저의 회사 퇴직금을 그렇게 활용한 거죠. 제가 너무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니까요.


그렇게 탄생한 올레길 덕분에 이제 제주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도 걷기 열풍이 불고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어떤가요?
굉장히 뿌듯해요. 걷는 것이라면 늘 위로 올라가는 하이킹이나 클라이밍만 생각했던 국내에도 트레킹 문화가 생겼다는 게 참 뜻깊은 일이죠.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하거나 대화를 하고, 문화 유적도 보면서 즐기는 것이 트레킹 문화잖아요. 똑같이 자연을 걷더라도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걸어 다닌다는 개념을 사람들이 즐기기 시작한 게 참 반가워요.


제주 올레길은 대부분 바다를 둘러서 길이 있잖아요. 그것도 평평하게 수평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해서였나요?
그렇죠. 개인적으로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외국의 트레일을 가보면 바다가 정말 귀해요. 그래서 아일랜드 쪽에 형성된 트레일과 바닷가 쪽에 형성된 트레일은 프리미엄 트레일이라고 하죠. 제주도는 바닷가에도 나무가 많고 숲이 있으니까 나무와 숲, 그리고 바다를 동시에 끼고 걷는 셈이죠.


어떻게 하면 가슴속과 머릿속에 남는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요?
저는 여행 가면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아요. 그 자체에 경탄하다 보면 사진 찍을 타이밍을 놓치거나 사진 찍는 것 자체를 잊어버릴 때가 많거든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가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의 마지막 밤이에요. 안나푸르나를 본 것도 감동적이었지만 더 잊을 수 없는 풍경은 산장에서 화장실 가려고 나왔다가 우연히 보게 된 풍광이었어요. 하얗게 빛나는 설산을 배경으로 별이 총총히 떠 있는 거예요. 하늘의 반이 별인 거죠. 그 별들이 전부 내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은데, ‘아, 이걸 본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있다’ 싶었죠. 바로 그것처럼 여행이라는 것은 어떤  장면이 가슴속에 남는 거예요. 그런 명장면을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평생 기억하게 되는 장면 중 하나죠. 정말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건 어떤 거대한 사원이나 건축물만이 아니거든요. 자기 앞에서 팔랑팔랑 지나갔던 흰 나비 한 쌍의 움직임, 수면에서 반짝이던 에메랄드빛의 바다, 숲을 거니며 들었던 동박새 울음소리…. 이렇게 오감에서 체험한, 그래서 자기 감각에 저장된 여행을 해야 하죠.


그렇게 감각에 저장되려면 마음을 열고 여행을 해야겠네요.
올레길을 한 시간 정도 거닐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돼요. 가끔 보면 목표 지향적으로 올레길을 걷는 분이 있어요. 올레라는 길 자체가 그런 성격이 아닌데, 산행할 때나 마라톤 뛸 때처럼 거의 앞만 주시하면서 골인점을 향해서 가는 거죠. 가끔 그런 분과 마주치면 이렇게 말해요. “빨리 갔다고 누가 상 안 줘요”라고. 진짜 제주를 느끼고, 즐기며 걷는 여행이 목적이라면 ‘놀멍 쉬멍 걸으멍’ 했으면 좋겠어요. 길에서 많이 쉬고, 길을 완주한 시간이 길수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슴에 남는 여행을 하게 되거든요.


 



 



ASK COSMO MENTOR “꿈을 찾고 싶어요. 꿈을 정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봤지만, 진짜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까지 모르겠어요.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도 꿈을 찾지 못해 답답하고, 막막하네요. 어떻게 하면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문지현(23세, 대학생)


저도 꿈이 없던 시기가 있었어요. 기자 생활을 그만두려고 마음먹은 순간, 그때까지 평생을 기자로 살면서 다른 것을 꿈꿔본 적도 없었고, 특별한 취미도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인생이 다 끝난 것만 같았죠. 그때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아주 막연한 꿈 하나는 있었죠.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는 것. 그때부터 산티아고에 가려고 적금을 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냈고요. 지금 꿈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일단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보세요. 거창한 꿈만이 꿈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면 지금이라도 한번 쳐본다든지, 어렸을 때 화가가 되고 싶었다면 그림을 새로 시작하든지. 작은 것이라도 해봐야 그다음에 거기서 파생되는 것이 있는 건데, 말만 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꿈이 자라지 못하죠. 아주 작은 일로도 가슴이 뛸 수 있는 거거든요. 일상에서 작은 만족이라도 찾는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꿈을 찾게 되고, 그 꿈을 이루는 행운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요.


ASK COSMO MENTOR “성공을 꿈꾸는 여자 회사원입니다. 이사장님은 올레길을 만들기 전 언론계에 있을 때도 성공하셨고, 제주도로 내려가 올레길을 만드는 엄청난 일도 이루어내셨잖아요. 그렇게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김현주(28세, 회사원)


그 일에 대한 사랑이에요. 기자를 할 때는 신문사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열심히 했으니까 성공했던 거죠. 저는 그 일을 정말 짜릿하게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꿈꾸던 기자가 돼 새벽까지 머리를 쥐어 짜면서 일했거든요. 물론 그 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내 기사가 지면에 인쇄됐을 때의 보람, 그리고 반향을 일으켰을 때의 짜릿함, 그리고 취재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재미. 기자라는 게 돈 받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즐기면서 했던 거죠. 물론 나중에는 그 일에 회의를 느끼고 떠나기는 했지만요. 올레길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그저 길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에 길 자체를 걷는 행복을 알아버렸고, 그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모든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거죠. 그렇게 미쳐서 한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시중에 보면 성공의 법칙에 관한 책이 많죠. ‘성공하려면 인맥을 쌓아라’, ‘네트워크를 잘해라’ 등등 많은 말이 있지만 어떤 원칙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사랑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일을 사랑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당연히 성과를 얻을 수밖에 없잖아요. 당장은 성과를 못 낼지라도.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돼 있죠.


ASK COSMO MENTOR “이번 여름, 혼자서 제주 올레길로 떠나보려고 해요. 요즘 마음도 불안하고 힘든데, 혼자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여행을 즐겨보려고요. 그런데 제주 올레길 21코스 중 어디를 가면 좋을까요? 모든 코스에 애착을 가지시고 있겠지만 한 곳만 추천해주세요.” - 이유민(31세, MD)


대부분의 올레꾼들은 14-1 곶자왈 코스를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마그마가 굳어진 불모의 땅에서 다시 생태계가 형성된 원시적인 숲의 모습이 놀랍다고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바다 쪽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바다에만 가면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고, 내 모든 근심과 고민을 바다에 다 떠넘기고 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가파도 코스를 참 좋아해요. 코스가 굉장히 짧아 한 시간이면 다 걸을 수 있는데, 그 섬에 가면 휴식하는 기분이 들죠. 가장 아름답게 서귀포를 조망할 수 있는 섬이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마지막 배를 타고 들어가는 거예요. 오후 4시쯤 사람들이 다 빠져나오는 순간에 들어가 길을 걸으면서 노을도 보고, 어둠 속을 걷기도 하고. 가파도는 주민이 150명밖에 안 되니까 불빛이 별로 없거든요. 하늘에서 별들이 그대로 쏟아지는 광경을 경험할 수 있죠. 두 번째는 추자도예요. 제주항에서 배로 2시간이 걸리는데, 아주 드라마틱한 풍광을 느껴볼 수 있죠. 산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아주 높은 절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어요. 그 대신 한 코스를 하루에 다 못 걸어요. 걷기만 해도 1박 2일이 걸리니까, 여유 있게 여행하려면 2박 3일 정도 넉넉히 잡으세요. 가파도, 추자도 두 곳 다 맛있는 음식이 많아 식도락 여행으로도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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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주, 김혜미<br/>Design 최인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3년 0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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