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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5 Wed

청년 창업, 돈보다 꿈과 열정

성공적인 창업의 핵심은 ‘돈’과 ‘경기’와 ‘운’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는 거라고? 그건 창업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자 걸림돌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보다는 ‘이상’과 ‘열정’을 좇았더니 어느새 자신의 꿈에 근접해가고 있더라는 청년 창업가들의 이야기에, 당신이 꿈꾸는 미래의 해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해외 유명 증권사에 입사해 흔히 말하는 ‘엘리트 금융맨’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쯤 되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스펙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주어진 일만 하면서 월급날만 기다리는 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부터 구상한 ‘인력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2012년 2월, 입사 1년 반 만에 사표를 던졌다. 그해 7월,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을 털어 인력거 2대를 구입해 청계천에 둥지를 튼 것이 ‘아띠 인력거’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없었지만 ‘필요한 일’은 반드시 있다
대학생 시절, 당시 보스턴에서는 인력거가 유행했는데 아르바이트로 인력거를 끌면서 단순한 인력거 서비스가 개발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와 사람 간의 소통에 매력을 느꼈다. 한국에는 인력거 서비스 시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전에 시장 조사나 리서치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인력거의 장단점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한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보자 결심했다. 서울에는 청계천과 북촌 등 뛰어난 관광 코스가 있지만, 차가 쉽게 드나들지 못하는 지역의 특성상 잘 모르는 외부인이나 외국인들은 겉만 슬쩍 보고 돌아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력거로 곳곳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안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고 지금 이곳에 꼭 필요한 사업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섰다. 약 1천만원을 투자해 차고와 인력거를 구비했고 인력거 서비스가 가능한 몇 가지 코스를 짜 코스 곳곳에 깃든 역사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공부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가 운을 트이게 한다
물론 사업이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젊은 청년이 자전거로 인력거를 끄는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타겠다는 손님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신기해하는 아이들,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어르신들을 공짜로 태워드리는 게 일이었다. 손님이 있건 없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헬로”, “니하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럴 때마다 밝게 화답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힘을 얻곤 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입소문을 타며 손님이 늘어갔다. 지금은 인력거 6대를 가지고 약 15명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금·토·일요일 원하는 시간대에 인력거를 끌고 움직인다.

다급한 마음을 버려야 발전하는 기쁨을 얻는다
단기간에 성공을 거두겠다는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지금까지 위기의 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 된 것 같다. 미리 몇 달간의 최소 생활비를 여유 자금으로 떼어놓았던 점도 창업 초반의 초조함을 극복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임하면서, 고비가 닥칠 때마다 ‘이렇게 하면 잘되겠지, 저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겠지’ 하는 깨달음을 얻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만족스럽다. 언젠가 서울에서 제대로 자리 잡으면 지방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의 방방곡곡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과 재미난 볼거리가 산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인력거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다.

 

상수역 3번 출구의 카페  ‘제비 다방’은  전시, 공연, 상영회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주목을 끌어왔다. 몇 년 전 독립 매거진 <원피스>가 영국 테이트모던에 입성했다는 소식이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이 둘의 배후(?)에는 ‘문화지형연구소 CTR’이 있다. 홍대 일대를 기반으로 어슬렁 프로젝트, 놀이터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며 한국의 놀이 문화를 바꾸겠다는  야심을 품은 이 단체는, 자하 하디드 건축 사무소를 거친 영국 왕립 건축사가 ‘건축’도 전문으로 하는 곳이기도 하다. 건축가, 작가, 아티스트, 기계공학자 출신의  문화 생활자들이 모여 만든 CTR의 실체는, 2005년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양산하기 위해 설립된 엄연한 문화 기업이다.

대한민국 문화 지형을 변화시키기 위해 모여들다
놀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의 문화 판도를 바꾸자는 취지로 창설된 CTR은 문화 콘텐츠 육성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영리 사업(건축 사무소, CTR 프린트, 제비 다방 등)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활동(<원피스>, 긴가민가 레코드, CTR 로봇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왔다. 얼마만큼의 수익을 내느냐는 우리에겐 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경제적인 풍요보다 정서적·문화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가  추구하는 문화 콘텐츠를 지지하면서 서로의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을 응원하고 있다. 부족함 없이 잘 돌아가고 있지만,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보다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씩 더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한다.

섣부른 투자를 받는 대신 자생력을 키워라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콘텐츠의 유기성과 유연함을 중시하는데, 투자나 지원이 있었다면 오히려 이에 제한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면 광고 하나 없이 진행하는 <원피스> 매거진의 경우도 만약 광고를 받았다면 그토록 다양한 시도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바라보며 나아가고 싶다면, 외부의 지원이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기획·인쇄·디자인 방면에서 우리의 능력을 발휘하고 이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으로 자금과 경비를 마련하고 있다.

구성원이 많을수록 한 명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처음엔 3명으로 시작했다가 함께하는 사람이 점점 늘었다. 그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확고한 취향을 지닌 구성원 모두가 타인의 취향을 어디까지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고 지금도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무조건 만장일치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수결로 결정해보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결국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좋아하는 일이면 나중에 그것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향과 의견을 존중하면서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스템으로 정착하고 있는 단계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결국 모두가 즐겁게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도 하나하나 케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자원이 산재해 있다. 터치포굿은 현수막처럼 잠깐 쓰이고 바로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회사다. 2012년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아 다양한 업사이클링 캠페인과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터치포굿의 대표는 올해 스물여덟의 젊은 여성이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좋은 일이 쉽게 공감을 사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던 여대생은 스물셋이 되던 2008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문제의식이 창업의 필요성을 이끌어내다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업사이클링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졸업을 앞둔 시기,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사회문제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몇몇 사람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해 생활용품을 만들어 판매해보자는 단기 프로젝트였는데, 막상 하다 보니 이걸 하려면 길게 보고 제대로 접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강하게 든 것이다. 버겁고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 너무 즐거워서 열심히 매달렸다. 젊은 친구들이 환경 문제에 뜻을 두고 열심히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에 도와주는 분이 많이 생겼고 창업 공모전에 나가 수상한 상금을 종잣돈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창업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만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나이에 창업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뜻밖에도 선뜻 도와주겠다는 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아직 어리고 어리숙해 보이는 내가 뭔가 뜻깊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니 도와주려는 분이 너무 많아 참 고마웠는데, 문제는 배가 자꾸 산으로 간다는 거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선의의 조언을 하면 그런 조언에 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절하기도 뭐하고 다 맞는 말 같아 멋모르고 무조건 끌려다녔던 적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 조언에 대한 책임은 결국 모두 내가 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전문성이 부족해 많이 헤맸지만 사실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데는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구두 공장, 가방 공장을 찾아가 직접 부딪히고 관찰하고 조합해서 우리만의 프로세스를 만들어냈다. 물론 창업 초반에 조언이 꼭 필요한 시기도 있다. 하지만 결국 최종 선택은 자신의 몫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모두 자신이 지게 될 거라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필요한 조언을 취사 선택하는 주관이 필요하다.

사회적 변화를 이뤄내고 싶다면 더 길게, 더 깊숙하게 접근해야 한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이해 자체가 선행되어야 발전할 수 있는 사업의 특성상, 처음부터 단기간에 뭔가를 이뤄내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좀 느리더라도 길게 보고 제대로 가야 맞는 분야라 생각했고 동시에 우리도 사람들의 의식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폐기물을 기업이 원하는 형태로 발전시켜 되돌려주는 서비스다. 지속적으로 현수막을 사용하는 단체라면 이전의 현수막을 이용해 새로운 행사를 위한 기념품을 만든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문화를 더 발전시켜 앞으로는 기업이나 기관에 다양한 폐기물 처리 관련 아이디어를 상담해주는 업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를 위해 꾸준히 크고 작은 컨설팅과 환경 교육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망상에 가까운 꿈까지도 공유하고 공감해 온 절친 둘이 있다. 각기 프리랜서와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둘은 스물아홉, 서른이 되던 해에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처음부터 공익 마케팅이라는 특정 분야의 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서로 하고 싶은 일을 쭉 늘어놨더니 그 접점에 있는 일이 문화 활동을 기반으로 자연과 사람과 문화 전반에 걸쳐 ‘모두가 함께 좋은 일’이었던 것일 뿐이다. 2009년, 커뮤니케이션 우디는 본격적으로 ‘공익 마케팅’을 표방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시작한다.

문화와 공익이 만나 새로운 콘텐츠를 창출해내다
한국의 사회적 비용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이마저도 식상하고 한정적인 항목에 편향되어 있다. 우리는 ‘좋은 일’이라는 게 단지 밥 한 끼를 제공하는 것에 국한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들에게도 단순히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뛰어난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도시락 한 끼를 제공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분들도 우리와 똑같이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든 귀한 음식을 대접받을 때 더 행복함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우리가 택한 방법은, 우리가 잘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문화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것에 다름 아닐 뿐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의 접점을 찾아라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법. 2005년부터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다. 우선 우리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했다. 둘이서  재능 기부하다시피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걸러가다 보니 현재의 틀이 잡혔다. 충분한 경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빵(0)원 창업’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철저히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사업이라 창업 초기 별도의 사무실도 필요 없었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발전시키다 나중에 소셜 벤처 센터에서 사무실을 지원받아 입주하게 되었다. 실제로 잘 찾아보면 연령·성별·분야·종목별로 세세하게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이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상과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동업하라
동업은 마치 부부 관계와 같다고 보면 된다. 같은 미래를 바라보고 서로를 신뢰하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원망하는 대신 채워주고 응원하는 그런 관계가 행복한 부부 생활을 보장하듯, 동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땐 헛된 망상처럼 웃어넘길 법한 서로의 이상과 꿈을 얘기하며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점이 우리의 확고한 파트너십의 기초가 됐다고 생각한다.

CREDIT
    Editor 박지현
    Design 최인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3년 05월호

기사입니다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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