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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Mon

절정 직전의 남자, 이민기

그저 축복받은 몸과 선한 얼굴을 가진 젊은 배우인 줄로만 알았던 이민기는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이 어디까지 내려가보았는지에 대해 소회했다. 이 인터뷰는 기실 그의 절정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두는 어떤 기록이 될 것이다. 에디터

 

맙소사, 지금 막 자정이 넘었어요.
그럼 우리 이틀을 함께하고 있는 셈이네요. 1박 2일에 걸친 촬영과 인터뷰라니.

민기 씨를 만나기 전에 예전에 한 인터뷰 기사를 읽어봤는데, 재미있는 인터뷰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히 ‘이 사람, 참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구나. 오늘 인터뷰 좀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랬어요? 사실 솔직하려고 노력하긴 해도, 결과적으론 속내를 다 못 드러내는 부분이 더 많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만큼만 보여주고, 가릴 건 가려서 이야기해야만 하니까요. 세상을 저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나와 관련된 사람이 있으니 좀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 영화, <연애의 온도> 때문에 만났으니, 일단 영화 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해요. 여름부터 찍은 영화를 겨울의 끝자락에 개봉하게 되었네요.
사실 제가 계속 여배우분들과 작업을 해와서, <오싹한 연애> 이후에는 ‘다음 작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자랑 할 거야! 이제 연애물은 그만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이 작품을 선택했죠. 왜냐고요? 가장 좋았던 건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특별했다는 점이에요. 기존의 로맨스물에선 느낄 수 없었던 담백함이 느껴졌어요.

사실 <해운대>도 그렇고 <퀵>이나 <오싹한 연애>도 전형적인 멜로 영화나 순수한 러브 라인이라고 말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요소나 설정이 덧씌워져 있었죠. 그러니까 쓰나미 앞에서 사랑을 확인한다거나, 폭탄 때문에 함께할 수밖에 없다거나 하는 영화적이고 만화적인 상상이 개입했을 때 일어나는 로맨스라는 설정.
맞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극적인 설정이 크게 개입하지 않는 영화라서 더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보통 ‘아, 여기는 힘을 주고, 여기는 감동을 줘야 하고’ 이런 계산이나 룰 같은 것이 극 중에서 느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계산을 다 뺀 쪽에 가까웠어요. 캐릭터 자체에 매력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이나 관계에 좀 더 무게가 실린 영화였죠. 그래서 저는 더 좋았어요. 연기에 대해서 ‘이 장면엔 이런 느낌이 필수적이지’라고 생각했던 것을 빼는 작업도 있었기 때문에 정말 좋았어요.

같은 모델 출신이고, 그래서 한동안은 ‘모델 출신 배우’라는 타이틀에 좀 눌린 듯하다가 비로소 배우로서 그 존재감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대역인 김민희 씨와는 인생의 비슷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김민희 씨와의 작업은 괜찮았나요?
사실 제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연예인이 민희 누나거든요. 옛날에 <순수의 시대>랑 <학교>에 나오는 것 보고 되게 예쁘다며 좋아했죠. 예전에 만났을 때 이 얘길 했기 때문에 누나도 그걸 알고 있어요. 하하, 내가 시골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며 동경했던 연예인? 모델 선배이자 연기 선배인 거죠. 그것 때문에 편하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는데, 편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래야 하잖아요. 오래 연애했고, 그러다 헤어지고 만나고를 여러 번 반복하는 커플로 나오니까요. 전화해서 만나고, 술 마시고 말 놓는 것부터 시작했죠. 재미있었어요.

민희 씨랑 함께 있는 스틸 사진을 보니 둘이 꽤 잘 어울리던데, 그 전엔 거의 모르는 사이였다니 좀 신기하네요. 그나저나 연애 영화니까, 민기 씨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민기란 남잔 사랑하는 여자에게 어떤 남자인 것 같아요?
흠, 그것 참 저도 알고 싶은 부분인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아주 극과 극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애교가 많고 또 어떤 사람에겐 되게 차갑기도 했고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
으하하, 잘 모르겠어요.

제목이 <연애의 온도>잖아요. 민기 씨가 생각하는 연애의 적정 온도는 몇 도인가요? 아주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좋아요? 아님 미지근하게 오래가는 쪽?
잘 모르겠어요. 연애는 일단 뜨거운 게 좋은 것 같은데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60, 70년을 뜨거울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그래도 이왕 하는 거면 저는 뜨거운 쪽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극적인 장치가 무척 제한되고 굉장히 담백하고 소박한 스토리텔링 위주의 영화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 속 캐릭터에 젖어들기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땠나요?
제가 맡은 이동희라는 캐릭터는 정말 뜨거운 아이예요. 사실 살면서 연애를 안 해본 게 아니었는데도 이동희를 연기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내가 살면서 진짜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오. 연애로 인해 벌어지는 갖가지 정서를 쪼잔하고 찌질한 부분까지 제대로 경험했달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사랑은 어떤 거예요?
몇 주 전에 영화를 한 편 봤는데,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되게 뜨겁고, 열정적이고, 격렬하고, 흥분되고, 막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하는 키스가 있다면, 그냥 숨 쉬듯이 하는 키스도 있을 거잖아요. 눈 마주치듯이, 속삭이듯이 하는 키스. 그런 키스를 할 수 있는 연인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편안하고, 따스한 그런 사람요.

하지만 연애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내가 이민기라도 쉽지 않겠어요.
신중하고 꺼려지는 게 많죠. 요즘 시대에는 더 그래요. 나는 아직까진 그렇게 진지하지 않은데 누군가는 내 마음을 잘못 해석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손댈 수 없는 영역으로 일이 진행될까 봐 두려워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그래서 그냥 ‘에잇, 말자!’ 이러죠. 흐흐.

20대 초반에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는데 민기 씨 나이가 벌써 스물아홉, 20대의 끝자락에 서 있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요, 생각보다 후루룩 금세 지나갔을 것 같기도 해요. 이제 슬슬 20대를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뭔가요?
내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요.

 

진짜? 설마.
내가 남다르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저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직업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지는 직업이긴 하지만 나는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해요. 좀 슬프죠 이런 얘기? 그런데 가끔 일하다 보면요, 분명히 ‘와, 난 정말 특별해’, ‘난 정말 똑똑해’, ‘난 정말 이런 부분은 남들과 다르게 잘났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내가 하나도 잘난 것이 없는 거예요. 작년에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여러 일들을 거치면서 다져진 결론이에요. 사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 자체가 막 즐겁고 그렇잖아요. 세월이 흐른다는 게 마냥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흐른 세월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죠. ‘내일도 뭔가 해야 하는데, 해내야 하는데’ 하며 내일이 온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하루 중 그렇게 순수해지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난 게 특히 작년이었죠. 조급증, 강박 같은 것이 저를 괴롭혔어요.

음반도 냈고, <닥치고 꽃미남 밴드>에서 로커를 연기하기도 했고, 넬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꽤 여운 깊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죠. 음악과 접점이 닿았을 때 민기 씨가 가진 재능이 폭발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뮤지션 캐릭터에도 욕심을 내봤을 것 같고요.
그런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좀 있었는데 아직 딱 맞는 작품을 못 만났어요. 좋은 작품을 만나면 좋을 거란 생각은 하죠. 요즘은 아침마다 벤자민 비올레이 음악을 들어요, 일어나서 눈도 잘 못 뜨고 있다가 한 6번 트랙 정도 되면 조금씩 기분이 바뀌는 거죠. 몸이 깨어나는 거랑 감정이 깨어나는 거랑 다르잖아요. 음악이 왜 좋으냐고 사람들이 제게 많이 묻는데, 감정을 움직인다는 게 아마도 음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짐작하는 민기 씨의 성격에는, 어쩌면 배우보단 뮤지션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할 필요가 없고, 공동 작업이란 부분이 좀 더 줄어들고 자기 세계에 온전히 파묻힐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그런 삶을 꿈꿔본 적은 없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그때엔 음악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막무가내로 그냥 좋아했죠. 서울에 와서 모델 활동을 하다가 음악에 빠진 거예요. 이미 연기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도 ‘연기 안 하고 그냥 음악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결국 ‘연기부터 하고 나서 음악을 생각해보자’라고 가닥을 잡은 거고요. 그런데 연기만 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으니까, 두 개를 동시에 한다는 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은 거죠. ‘언젠가는 꼭 해야지’라는 마음은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살아보니까, 지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대로 뮤지션의 삶을 살 자신이 내게 있나 하는 의문이 들어요.

뮤지션의 삶을 살아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배우의 삶이 더 매력적이고 자신에게 잘 맞는 길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네요.
배우란 작품이 들어오고 그것을 하겠다고 하는 순간 어떻게든 움직여나가야만 하죠. 마음이든 몸이든 뭔가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야 하고. 그런 부분이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에너제틱하게, 살아가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해요. 하루를 살더라도 목표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질감의 차이가 정말 커요. 하루 종일 열심히 돌아다녔는데도 ‘내가 오늘 단 5분이라도 좋았던 시간이 있었나?’라고 생각되는 건 정말 싫어요.

천만, 300만, 또 300만… 최근에 했던 세 작품이 모두 흥행 성적이 꽤 괜찮아서 이민기 씨 앞엔 어느샌가 ‘팔리는 배우’란 수식어가 붙었죠. 이건 꽤 괜찮은 평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더 팔리는 배우가 되기 위해선, 그러니까 CF 모델로서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능에 좀 더 투신해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는 점을 민기 씨도 알고 있죠? 인기의 척도가 숫자로 환산되는 것은 슬프지만 그게 현실인 건 누구나 다 인정하는 것이니까.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할리우드 배우들은 CF를 하는 것이 오히려 굴욕이라는 이야기요. CF를 찍기 시작하는 순간 배우로서의 급이 떨어진 거라는 이야기. 예능이든 CF든 필요하면 할 것이고 또 하다 보면 그것을 통한 즐거움도 느낄 거란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의 저는 ‘한 가지를 하면 일단 그것만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한 상태인 건 확실해요.

 

요즘 들어 민기 씨가 출연했던 영화에서 제가 느꼈던 점이 그거예요. ‘아, 이 친구,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부쩍부쩍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구나. 초반이랑 후반이랑 눈빛도 다르고.’ 어쩌면 제가 관객으로서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요. 그렇다면 가장 많은 성장을 경험하게 해준 작품은, 아마도 <태릉선수촌>?
네. 그 작품은 저라는 배우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그런 작품이죠. ‘아, 나 연기라는 걸 시작하는구나’, ‘배우라는 직업을 내가 해내야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된 계기였고요. 그 후로 했던 작품은 몸으로 따지자면 이곳저곳을 따로 단련시킨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에서는 근육이 확 늘어났고, 또 어떤 작품을 통해서는 시력이 정말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작품마다 저에게 가르쳐준 부분이 다 다른 거죠.

솔직히 아직까진, 연기하다 막히는 때도 있죠?
네. 막힐 때가 있죠. 하지만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현장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답을 찾다 보면, 어느샌가 문제가 해결되곤 했던 것 같아요.

민기 씨는 배우로 사는 것이 행복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계를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민기 씨에겐 이곳이 어떤 의미인가요?
이야~!

왜요?
오늘 유독 많이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시네요. 음, 내가 속해 있는 이곳에 대한 생각은, 말하자면 해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요. 몇 해 전에는 이곳이 내겐 그저 ‘빛 좋은 개살구’였어요. 그리고 작년에는 정말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나를 살 수 있게끔 해준 곳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때그때 나에게 무엇이 왔느냐에 따라서 내가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여기 때문에 행복하지만 또 여기 때문에 내가 죽겠고 그렇죠. 계속 있을 거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정말 그러고 싶어요’쯤이 되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오늘 화보 촬영 말이에요, 이민기란 남자의 섹시함을 증폭시켜보려는 의도가 다분한 화보였어요. 섹시한 남자의 조건은 뭐라고 생각해요?
(무릎을 탁 치며) 아!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그 점퍼! 점퍼가 너무 섹시했어! 크크. 그리고 그런 것 있잖아요. 자기를 다 바칠 수 있는 남자라는 게 너무 섹시했어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알았고, 그걸 위해서 모든 걸 다 던지잖아요. 행복했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게 정말 섹시한 거다라는 생각도 들었죠.

섹시한 이민기에게 마지막으로 묻죠. 이민기는 왜 배우로 살고 싶나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데,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건데 왜 안 해야 되죠? 배우라는 직업이 내가 사는 이유고 의미가 되었으니까요.

 

CREDIT
    Editor 곽정은
    Design 이지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3년 0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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