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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Mon

그녀와의 첫사랑, 그와의 결혼

그녀가 여고 동창생 ‘그녀’와의 굉장히 열렬했던 첫사랑을 코스모에 고백했다. 현재 아내와 엄마란 타이틀로 살고 있는 그녀가 내린 사랑의 정의에선 상대방을 ‘이성’이란 범주에 가두지 않는다. 양성애자임을 고백한 그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정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이 광주 시내에 가득 울려 퍼지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처음 ‘사랑’이란 걸 경험했다. 사귀는 동안엔 가슴이 터질 듯 행복했고 헤어질 땐 죽을 만큼 아팠다. 연애 감정은 반드시 ‘이성끼리’ 주고받는 거라고 믿는 당신이라면 나의 스토리를 굳이 ‘동성애史’라고 불러도 좋다. 여자인 내가 여자를 사랑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고등학교 1학년, 전교 300등 언저리를 배회하는 평범한 아이였던 내 눈에 자꾸 들어온 그 아이는 전교 3등 안에 드는 같은 반 친구였다. 묘한 매력이 있는 아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등수 차이는 쉽게 그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벽을 만들어버렸다. 2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고 어쩌다 짝이 되었는데,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도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교복을 입던 그때에도 패션 감각이 돋보였으며, 생각보다 눈이 더 크고 깊은 정말 괜찮은 아이였다. 내 시야에 그 아이만 가득히 들어오는 날들이 꽤 지나간 후 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분명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내 감정을 슬슬 눈치 채던 그 아이가 빽빽이 쓴 편지를 건네며 내 손을 꼭 잡아준 날 우리의 거침없는 사랑은 시작됐다.

홀하고 애틋했던 최고의 첫사랑
‘여고라는 특수 상황 때문은 아닐까?’ 의심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아니었다. 여태까지 몇 명의 여자를 사귀었고 그보다 많은 수의 남자 친구를 만났지만 한 번도 성별을 이유로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에 솔직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호모 섹슈얼인가?’라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대체로 남자가 좋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만약 사랑을 양과 질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면 양적으론 남자를 많이 만났지만 질적으론 아직까지 그녀만큼 나를 사로잡은 사람을 만난 적은 없으니까 말이다. 어찌 됐든 그땐 여자를 사랑하는 데 특별히 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서른 살쯤 되었다면 부모님, 결혼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골치가 아팠겠지만 당시 우린 질풍노도의 불꽃같은 청춘, 열일곱이었다. 커밍아웃하고 말고도 없이 대놓고 사귀던 우리 둘은 요주의 대상 1호였다. 손잡고 지나가는 걸 볼 때마다 “너희 둘 손 떼”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학생주임은 쉬는 시간마다 우리 둘을 떼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3학년에 올라갈 때는 원래 같은 반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꾸어놓기까지 했는데, 그녀가 없는 낯선 반에 들어가 출석부 맨 밑에 볼펜으로 적은 내 이름을 봤을 때 느꼈던 절망감은 잊을 수가 없다. 거의 매일 주고받았던 교환 일기에 적힌 서로에 대한 마음은 굉장히 뜨거웠다. 수시로 야간 자율 학습을 빼먹고 같이 나가 놀았다. 물론 다음 날 교무실에 불려간 사람은 전교 3등인 그 아이가 아닌 나 혼자였지만 말이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날 때쯤 가방을 찾으러 학교에 돌아오면, 학생주임이 내 가방을 들고 교문 앞을 지키는 일도 일쑤였다. 영화를 좋아해 개봉작은 빼놓지 않고 같이 보러 다녔다. 참, 첫 키스는 조조 영화를 보다가 하게 됐다. <툼스톤>이란 영화였는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 시작 무렵부터 끝날 때까지 입술이 퉁퉁 붓도록 키스를 했으니까. 나를 저만치 딴 세상으로 몰아낼 만큼 감동적이고 황홀한 키스였단 기억은 확실하다. 나는 분명 사랑받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으로부터. 그만큼 행복하고 황홀한 일은 또 없을 거라 생각하는 사이 고등학교 시절이 흘러갔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언젠가 밤중에 으슥한 곳에서 키스를 하던 우리를 발견한 한 초등학생이 “여자끼리 키스한다, 여자끼리 키스한다!”를 외치며 혼비백산했던 일이 있었다. 엄마들 사우나만 한번 다녀와도 온 동네 소식을 다 들을 수 있다는 작은 지방 도시에서 우리에 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급기야 담임 선생님은 긴급히 양쪽 어머니를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열었다. 대책 회의를 마친 엄마는 청소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터미널 쪽으로 가면 일면식 없는 사람들만 오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엄마는 그 근처의 작은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태어난 후로 노상 엄마와는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난생처음으로 엄마가 다정다감하게 ‘설득’을 시도했던 날이었다. 요는 이랬다. 1~2년만 지나면 남자를 사귈 수 있으니 참으라는 것. 지금의 감정은 성적 호기심을 주체 못 해서일 뿐이라는 것. 난 ‘왜 우리 엄마는 아직까지 사랑을 모르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더욱 마음을 닫아버렸다. 이유 없이 많이 아프기도 했다. 살이 쭉쭉 빠지고 항상 가슴이 무언가로 막혀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도 답답했지만 그 아이의 진심을 자꾸만 의심해야만 했던 상황이 답답했다. 그 아이에게 야릇한 눈빛을 보내던 몇몇 여자애도 항상 마음에 걸렸다. 잠시 지나가는 사랑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과 의심이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시골에서 꽤 괜찮은 폐가를 발견했다며 그곳에 같이 들어가 살자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폐가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집에 돌아와 조용히 이불을 비롯한 살림 몇 가지를 챙겼다. 집을 떠나는 일이 조금은 슬펐지만 이제는 눈치 안 보고 둘이서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 가득 안고서 집을 나섰다. 결국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굴복하고 자진해서 돌아오긴 했지만 내 생애 최고로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해 겨울엔 크리스마스 날 둘이서 조촐히 약혼식을 치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이벤트였지만 당시엔 굉장히 진지했고 또 행복했다. 그때 받은 선물들은 지금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우리 정말 사랑이었을까?
수능 시험이 다가올 무렵 우리 사이는 예전처럼 뜨겁지 못했다. 일단 나의 경우, 그 아이가 갈 대학 근처라도 가기 위해선 공부가 절실한 시기였다. 점점 야간 자율 학습을 빼먹는 일도 없어졌고 때때로 그 아이가 나를 서운하게 만드는 일도 생겼다. 계속 사귀긴 했지만 여느 연애처럼 점점 식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결국 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물론 그 아이는 내로라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재수를 하며 또 한 번 더운 여름을 버티고 있을 때쯤 그 아이에게서 ‘헤어지자’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 말대로, 대학 가서 남자 만나니까 달라진 건가? 고작 그런 사랑에 난 모든 걸 걸었던 걸까?’ 난 한 달가량 침대에서 울면서 보냈다. 대학에 입학한 후 그 아이의 집에 찾아간 적이 있는데 불을 끈 천장에서 빛나는 야광 별을 본 후 난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낯선 사람의 이름과 그 아이의 이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하트 모양. 더 얘기할 것도 없었다. 우리는 정말로 끝났다.

나는 양성애자입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난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는데 그 아이는 내 새로운 사랑에 꽤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때마다 ‘그때 그게 사랑이지, 지금 이건 아니야’란 생각이 나를 오랜 시간 괴롭혔으니까. 그렇게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거라 믿었지만, 결국 사랑은 또 찾아와주었다. 대학 4년 동안 3명의 남자, 2명의 여자와 연애를 했다. 그중 한 명의 여자와는 꽤 진지했는데,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한국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나가 살기로 약속하고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도 있었다. 그토록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면서 말도 안 되는 작은 일이 발단이 되어 굉장히 크게 싸웠고 엄청난 상처를 안은 채 결국 또 헤어졌다. 물론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좋은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지만. 여자와 연애하는 것은 남자와 하는 것에 비해 훨씬 섬세한 것 같다. 남자와 사귈 때라면 ‘남자는 그런가 보다’라며 넘겼을 부분이 거의 없으니까. 그래서 훨씬 더 깊게 빠지고 그만큼 치열하게 싸우게 되는 것 같다. 훨씬 더 많이 기대한 만큼 상처도 많이 받고. 어쨌든 내 지난 사랑 리스트는 성별로 구분되어 있진 않다. 이성이었든 동성이었든 내 어떤 부분을 채워주었고, 어떤 추억을 공유한 사람인지 각각 개별적으로 소중하게 등록돼 있다. 만약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다면 난 양성애자라고 얘기하겠다. 많은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세상 사람들의 80%가 양성애자이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각각 10%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성애자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지만 그때 그 아이와의 경험은 내 성적 취향에 대해 100% 솔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내가 다닌 여대는 성적 담론화가 활발한 분위기였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난 다양한 성 정체성에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양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지만 남편에겐 내 첫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포함한 모든 연애사를 일절 말하지 않았는데 그는 상상력만 풍부해진다고 종종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의 상상 속 시나리오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을진 모르지만 내 실제 첫 사랑 이야기는 들어 있지 않을 거란 것은 확신한다. 그가 살아온 환경을 보면 이 일은 그의 상상 밖에 있으니까. 이메일, 메신저, 각 종 사이트 등에 사용하는 내 아이디가 사실은 내 첫사랑 여자아이가 붙여준 애칭이라는 것을 그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가정과 학교, 군대, 회사를 거치며 남자들이 어떻게 사회화되는지 알고 있기에 굳이 이야기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자위하지만, 어쩌면 그저 변명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성 정체성과 취향의 다양성에 대해 사람들이 오픈 마인드를 가지게 되는 날이 오면 연인 사이끼리 이런 대화를 나누는 때가 올 수도 있을 거란 상상은 종종 한다. "그래서 과거에 몇 명이란 사귀었어? 여자는 몇 명이고 남자는 몇 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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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인영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1년 0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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